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1) 1.이별노래, 이규보의 임진강 ①
수정 : 2019-11-18 06:07:55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1)
1. 이별노래, 이규보의 임진강 ①
연재를 시작하며
임진강은 도무지 건널 수 없는 단절의 강으로 놓여 있다. 우리 땅, 우리 역사의 중심에서 숫한 사람의 오갔던 사실은 잊힌 채 강은 우리 눈 밖을 흐르고 있다. 70년이 수천 년을 망각하게 하는 오늘이다. 임진강이 다시금 우리 삶 한 가운데로 흐르는 날을 생각한다. 문학 작품으로 남은 임진강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규보, 김부식에서 현재에 이르는 천년 임진강을 되짚어 보려 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이제현과 이색, 김시습, 또 율곡과 우계와 빛나는 실학자들, 패기 넘치는 선비들과 고민하는 지식인을 비롯한 다양한 얼굴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임진강을 건너서 역사가 온다. 미래도 이 강에서 올 것을 확신한다.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연재 차례
1. 이별노래, 이규보의 임진강
2. 고향, 이제현의 개성팔경
3. 유배·망국, 이색의 장단음
4. 갈림길, 고려와 조선 두 나라 사이에서.
5. 두 서울 사이, 길목
6. 방랑, 김시습과 남효온
7. 정착, 양반들의 임진별서
8. 율곡과 우계(1)/ 학문
9. 율곡과 우계(2)/ 전란
10. 율곡과 우계(3)/ 교우
11. 다른 길. 임진강이 된 사람, 허목
12. 여행. 고을 수령들이 찾은 임진강/ 이덕무, 이의현, 신유한
13. 모색1. 조선의 문화가 꽃 핀 자리/ 열하일기와 적성촌과 임원경제
14. 그들이 온 임진강/ 연암, 다산, 풍석 그리고 혜강
15. 침잠. 창강이 발 씻은 물
16. 단절, 현대의 임진강
▲ 이규보의 저작
1. 이별노래, 이규보의 임진강
이별하는 사람들의 특별한 장소
우리는 일상 속에서 늘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다. 오가는 곳곳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가득하다. 일상의 접촉들은 그러나 우연하거나 반복적인 것이어서 특별한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살던 곳을 버리고 멀리 떠나게 된다면? 나날의 사연 모두가 특별해 진다. 무심했던 일상의 공간도 각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헤어짐이 아쉬운 이들은 어디선가 헤어지는 의식을 치른다. 이별의 뒷모습을 보이는 곳. 옛날 그곳은 동구 밖이었고, 버스 정류장이고 기차역이었다가 지금은 공항으로 확대됐다. 그 옛날 임진강은 동구 밖이었고 기차역이었으며 때로는 공항이기도 했다. 강은 이별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치러지는 특별한 장소였다.
“먼 갯벌에 흰 연기 깔려 있고/ 맑은 물굽이에 황금빛 태양 솟는다./ 세 사람이 이별의 눈물 뿌리니/ 바닷물처럼 깊은 정을 알겠구나.(이규보. 「9월13일에 서울을 떠나 전주로 갈 때 임진강 배 위에서 진공도ㆍ한소와 작별하다.」,1200년)”
▲ 이규보의 초상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는 수재 소리를 들었지만 뒤늦게 벼슬에 올라 32세에 전주로 고을살이를 떠난다. 시는 이때 이규보가 벗들과 헤어지며 쓴 것이다. 이들은 도성인 개성을 함께 나왔다. 그리고 임진강을 건넌 뒤에 헤어졌다. 9월 13일이라고 날짜까지 적어 놓은 것은 이날을 각별히 여긴 때문일 것이다. 진공도는 이규보의 처형이고 한소는 조카사위다. 이들은 혈연이자 함께 어울려 지내던 벗이었다. 이들은 나중에 이규보가 고을살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올 때도 함께한다. 이규보는 임진강을 건넌 열흘 뒤인 9월 23일 전주에 들어간다. 그리고 긴 여정에서 잊고 있던 낯선 곳으로 떠나온 현실을 깨닫는다.
“갑자기 완산의 푸른 빛 한 점 보니, 타향인이 된 몸 비로소 알겠구나”
고을살이는 쉽지 않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송사와 문서, 그리고 이곳저곳을 순찰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술그릇에 녹이 슬고 거문고 뚜껑에 먼지가 쌓일 정도였다”고 말한다.
“고을살이 즐겁다 마오. 고을살이 걱정뿐일세.”
박봉의 지방관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1년만인 다음해 12월 파직되어 전주를 떠나게 된다. 한소는 전주까지 와서 이규보를 맞는다. 개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침 광주(경기도)에 있던 진공도를 찾아간다. 이들은 1200년 섣달 그믐밤을 함께 지낸다.
▲이규보가 건넌 방향의 가을의 임진나루
이때도 임진강을 건넜을 테지만 그 노정은 보이지 않는다. 이별의 정감으로 북받치던 떠날 때의 임진강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임진강은 이별이 이루어지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그저 지나치는 길목일 뿐이었다. 장소의 상징성이란 이렇게 가변적인 것이다. 돌아와 남긴 글도 낯선 전주로 향하던 때와 사뭇 달랐다.
“누가 너에게 혼자 곧으라 하여/ 세태 따라 처신하지 못하게 했는가./ 농사꾼 되는 것이 제격에 맞으니/ 돌아가 호미 메고 농사나 지으리라(이규보. 「자신을 조롱하면서 서울에 돌아와서」 부분)”
그러나 그는 농사를 짓지 않았다. 스스로 조롱할지언정 더는 서울은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재석 / DMZ생태평화학교 교장, [임진강 기행], [걸어서만나는 임진강]저자
#102호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